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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9 0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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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하나를 들어 어느 쪽에 두는 가에 따라 무게 중심이 이동(移動)돼 세력의 우열이 결정된다는 뜻의 거족경중(擧足輕重)은 후한서(後漢書) 두융전(竇融傳)에서 볼 수 있다.


한신(韓信)이 한창 한(漢)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와 싸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제(齊)의 변사(辯士) 괴통이 찾아와 유방을 배반하고 독립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룰 것을 권하지만 한신은 유방과의 신의(信義)를 지켜 거절했다.


당시는 초(楚)와 한(漢)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상황이라 한신의 거취(去就)는 유방과 항우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돼 있었고 그래서 괴통은 한신에게 ‘천하가 처음 난을 일으켰을 때는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이 연이어 크게 한 소리로 외치자 천하의 뜻있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합치고 안개처럼 모여들었으나 이때는 다만 어떻게 하면 진(秦)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만이 공통의 관심사였으나 지금은 천하가 초(楚)와 한(漢)의 둘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있으며 현재 한왕(漢王) 유방과 항왕(項王) 항우의 두 목숨은 장군에게 달려 있는데 장군께서 한(漢) 나라를 위하면 한이 이기고 초(楚) 나라에 가담하면 초 나라가 이기게 돼 있다’며 권했다.


한신과 같이 저울대를 쥐고 있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거족경중(擧足輕重)이다.


그러나 본디 이 말이 출현한 것은 그보다 약 230년 뒤인 동한(東漢) 초기이다.


후한서(後漢書) 두융전편(竇融傳篇)편에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국내를 평정할 때 최후까지 남은 군웅(群雄)은 하서(河西)의 두융(竇融)과 농서의 외효(潭浴) 그리고 촉(蜀)의 공손술(公孫述)이었다.

 

유수는 하서의 땅이 기름질 뿐 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농서와 촉에 연접(連接)돼 있어 먼저 두융을 회유(懷柔)해 둘을 치고자 했다.


그래서 두융에게 조서(詔書)를 보내 ‘지금 공손술과 외효가 다투고 있는 바 저울대는 바로 당신이 쥐고 있는데 이때 당신이 다리를 좌우 어느 쪽에 두는가에 따라(擧足左右) 저울의 무게는 달라질 것’(便有輕重)이라고 했는데 이 광무제 조서의 말 중에서 인용한 것이 거족경중(擧足輕重)이다.


결국 두융을 끌어들인 유수는 마침내 두 군웅을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게 되며 이때의 공으로 두융은 한 나라 조정에서 감찰을 맡는 정승인 대사공(大司空)에 올랐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어떤 사안(事案)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 이를 거족경중(擧足輕重)이라고 한다.

 

오늘의 한자

 

擧 : 들 거, 足 : 발 족, 輕 : 가벼울 경, 重 : 무거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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