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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11 21: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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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타임] = 이강부 기자 = 부여군은 지난 4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 관리사업의 하나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능안골고분군(사적 제420호)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백제 사비시대 돌방무덤과 봉분 일부를 확인했다.

 

부여 능안골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귀족층의 무덤으로 인식돼 왔으며 1995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친 긴급 발굴조사(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시행)를 통해 은제관모장식과 금동제이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사적 제420호로 지정된 곳이다.

 

2017년부터 능안골고분군 북동편 지역에 대해 시굴과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조사는 그 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백제 사비기 무덤의 봉분 조성방식 등을 파악키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 총5기의 백제 사비기 무덤이 확인됐으며 그중 잔존상태가 양호한 무덤의 구조는 현실과 연도, 묘도로 이뤄진 횡혈식석실묘(굴식돌방무덤) 2기와 현실과 묘도로 이뤄진 횡구식석실묘(앞트기식돌방무덤) 1기로 현실 내부에서 금동제이식, 철제 관못, 관고리가 출토됐다.

 

확인된 백제 사비기 무덤 중 1호 묘는 거칠게 다듬은 돌을 이용해 단면형태 터널식으로 구축됐고 현문 시설 없이 연도와 묘도가 달린 횡혈식 석실묘로 조사범위 내에서 가장 먼저 축조된 무덤에 해당한다.

 

현실의 천장석 상부로 약80㎝ 정도 두께의 봉토가 일부 남아있으며 봉토 층은 이 일대 지반을 이루고 있는 풍화암반토와 깬 돌을 섞어 단단히 다져진 상태다.

 

3호 묘 역시 장방형으로 비교적 잘 다듬은 판석을 이용한 단면형태 육각형의 현실과 문주와 문인방석으로 이뤄진 현문시설과 연도가 달린 횡혈식 석실묘로 1호 묘보다 늦게 조성됐다.

 

특히 북쪽과 동쪽으로 형성된 자연곡간부로부터 무덤의 유실을 방지키 위해 석실 조성 이전에 수평지반을 조성한 흔적이 확인됐으며 현실 천장석 상부로 최대 두께 86㎝ 정도의 봉토 층이 남아있으며 직경 7.7~10.1m 규모의 타원형태로 확인됐다.

 

3호 묘의 봉토 층은 모래함량이 높은 흙을 이용해 중앙의 매장시설을 향해 비스듬하게 상향하는 방향으로 형성됐다.

 

4호 묘는 경사면 삭평으로 인해 석실 대부분이 파괴됐지만 내부에서 금동제이식 1쌍이 출토됐고 5호 묘는 현실과 묘도로 이뤄진 횡구식석실묘로 조사범위 내에서 가장 늦은 단계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능안골고분군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귀족층의 다양한 무덤 구조와 축조순서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그 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무덤 영역 내 대지와 봉토 조성 방식을 확인함으로 추후 유적 정비와 복원의 기초자료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도성 밖에 무덤을 조성하는 사비도성 경외매장지 중 부여 능안골 고분군 주변의 백제고분 분포 양상과 현황을 밝히기 위한 조사가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에 있다.

 

조사지역은 능산리 고분군 동편부터 능안골고분군을 포함한 부여읍 능산리, 용정리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성곽, 사적 제34호 청마산성 남성벽 아래편 사면부 일대로 조사결과 100여기의 백제고분이 새롭게 확인돼 부여 능안골 고분군 일대에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백제고분의 분포 밀도와 범위가 넓게 형성돼 있음이 확인됐다.

 

부여군은 문화재청과 함께 능안골고분군을 비롯한 부여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실체 규명을 통해 백제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유적의 보존과 관리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현실은 시신을 안치한 방이며 연도는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이고 묘도는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을 일컷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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