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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0 16:13:45
  • 수정 2018-02-12 16: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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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제36계 주위상(走为上) 때로는 작전상후퇴도 필요하다.

 

때로 후퇴도 필요하다는 제36계 중 마지막 계책으로 계획적으로 후퇴하여 후퇴를 진격으로 삼고 기회를 노려 적을 섬멸한다는 뜻이다.

 

이 계책은 모략 가운데 상책으로 꼽히며 손빈은 후퇴로 전쟁에 임하면서 방연을 마릉도로 유인하여 일거에 섬멸하고 중국 고대 전쟁사의 화려한 한 폐이지를 장식한다.

 

손빈은 이 페이지를 남기고 떠나면서 손자병법과 그가 쓴 손빈 병법을 남긴다.

 

2000년 후 손자병법이 세상을 풍미할 때 세간에 떠도는 소문은 손자병법을 쓴 사람은 손빈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1972년 산둥성 임기현 은작산 서한묘에서 죽간이 출토 됐는데 그 중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발견됨으로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남북조시대 남조 제(齊)나라의 명제(明帝) 소란(蕭鸞)은 황제에 즉위한 이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무제의 아들 17명, 형제 12명 그리고 여러 명의 손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러자 개국공신인 회계(會稽)태수 왕경칙(王敬則)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반란을 일으켰는데 왕경칙은 군사 1만을 이끌고 수도 건강(健康)을 향해 진격했다.

 

당시 명제는 병이 위독한 상태였는데 왕경칙이 창졸지간에 동쪽에서 들고일어나자 조정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명제의 둘째 아들 소보권(蕭寶卷)은 동궁에서 반란 진압을 논의하면서 사람을 시켜 지붕에 올라 살펴보게 했는데 정로정(征虜亭)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왕경칙이 이르렀다고 보고하자 소보권은 급히 행장을 꾸려 도망갈 준비를 했다.

 

누군가가 왕경칙에게 이를 보고하자 왕경칙이 “그들 부자에게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겠지 단공(檀公)의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이 최고의 계책이라 했거늘 너희 부자는 서둘러 도망하는 게 좋겠지”라고 말했다.

 

왕경칙이 처음 공격해 올 때는 그 세가 아주 대단했으나 며칠 만에 패하고 말았는데 이때 왕경칙은 70여 세였다.

 

이 이야기는 남사(南史) 왕경칙전(王敬則傳)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주위상이라는 말이 유래했으며 주위상계(走爲上計) 혹은 주위상책(走爲上策)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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