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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타임] = 이강부 기자 = 공주시는 조선후기 공주에서 활동했던 문신 한태동을 6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
시에 따르면 한태동의 장인인 연일정씨 정영한이 공산현감을 지냈다는 기록을 통해 한태동이 처가로 인해 공주와 인연을 맺었음을 알수 있다.
한태동이 사은사로 연경에 다녀와 장령과 집의를 거쳐 홍문관 교리로 있던 1682년 서인의 김익훈과 김석주 등은 남인들이 복평군을 왕으로 추대할 역모를 꾸몄다며 고발했는데 심문 결과 상당 부분이 무고로 밝혀졌다.
한태동은 같은 서인으로 조지겸 등 소장파와 함께 김익훈, 김석주 등의 흉계를 폭로하고 처형을 주장했다가 이듬해 파직됐다.
이를 계기로 서인은 김익훈 등을 옹호하는 노장파 중심의 노론과 김익훈의 처벌을 주장하는 소장파 중심의 소론으로 나뉘었다.
한태동은 1684년에 사헌부 집의로 복직됐는데 김익훈의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며 비난하는 상소를 올려 파직과 복직을 거듭했다.
이런 한태동의 정직하고 준엄한 성품으로 인해 조정에서 “한태동은 본래 고집해 지론이 매우 준절해서 견벌을 입음이 정도에 지나쳤다”며 등용할 것을 요청했다.
한태동은 1687년 10월 경기도 광주에서 42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실록에 따르면 그는 임금에게 바른 말을 간해 권세가의 미움을 받아 크게 출세하지 못했고 가난을 개의치 않는 청백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한태동의 저서는 시와유고가 있으며 묘소는 공주시 웅진동 일원에 있으며 공산지에는 공주시 남부면 혈봉 아래에 묘소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관련 유물로는 한태동의 간찰과 1666년 한태동 생원급제 교지, 1681년 조봉대부 공청도 도사 교지가 전해진다.
남윤선 문화재과장은 “청렴하고 정직했던 조선후기 문신 한태동의 삶을 기리기 위해 6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으며 6월중 시민을 대상으로 한태동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